삼국지 위촉오 국력 비교

코에이에서 만든 게임을 바탕으로 실제 역사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조조, 유비, 손권이 활동했던 시대는 후한말 입니다. 후기 한나라 말기라는 의미입니다.

인기가 많지만 막상 실질적으로 50~100년의 기간으로 비교적 짧기도 합니다.

위나라

건국은 조비가 했지만 나라의 기반은 모두 조조가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1대 황제가 조비이고 조조는 일종의 명예 황제로 추증되었습니다.

일단 영토를 기준으로 해도 중국 대륙의 70%를 차지했습니다. 나머지 30%는 오나라와 촉나라입니다.

구체적으로 오나라 20%, 촉나라 10%로 해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조가 원소를 이기고 세력을 확장한 시점에서 이미 통일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30%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진짜로 통일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전체 백성도 오나라와 촉나라를 합친것에 3배 정도로 추측되고 경제규모도 월등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일단 위나라는 대부분 평지 지형으로 대규모 농사를 짓기 좋고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습니다.

따라서 경제규모는 촉나라의 10배 정도로 평가하는 견해도 많습니다.

이렇게 나라 규모 자체는 차이가 많이 나지만 의외로 차이가 크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바로 군사력 입니다.

위나라의 병력은 20만명 수준으로 추측됩니다. 나라 규모에 비해서 비교적 적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삼국지시대는 대략 1800년 전으로 지금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나 병법적으로 소위 말하는 대규모 50~100만명을 통제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물론 소설 삼국지에서는 100만 대군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과장된 수치입니다.

촉나라

영토, 경제규모 면에서 모두 위나라의 1/10 수준으로 생각보다 더 적은 수준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촉나라 같은 작은 나라가 위나라와 대등하게 싸웠다는 것은 대단하기도 합니다.

나라 규모 자체는 차이가 많이 나지만 병력은 10만명 규모로 추측됩니다.

국력 차이를 감안하면 병력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전쟁에 대한 부담은 컸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위나라는 한번 전쟁을 해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었습니다.

반면 촉나라는 한번 전쟁을 하면 아주 부담이 많이 되는 수준이였습니다.

10만명과 20만명의 싸움이라고 해도 촉나라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하긴 했습니다.

위나라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경제 규모가 차이가 더 나기 때문에 무리한 침공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버티기만 하면 결국 나라의 규모가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촉나라도 이걸 인지했기 때문에 제갈량이 출사표를 쓰고 위나라와 싸우는 북벌을 감행한 것 입니다.

즉 10만명이 침공을 하고 20만명이 방어를 하는 형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방어하는 쪽은 병력이 더 적어도 유리합니다. 그런데 위나라는 방어를 하면서 병력도 더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비, 제갈량, 강유 등이 위나라 정벌을 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삼국지
삼국지6pk

오나라

촉나라보다 규모가 크진 하지만 위나라의 1/5 수준으로 추측됩니다.

병력은 촉나라보다 조금더 많은 15만명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수상 지형에 익숙한 수군으로 편제되었습니다.

실제로 오나라가 위나라의 서주를 침공할 때 평지 지형에서 아주 고전했습니다.

수군을 기반으로 한 본인들의 영토에서는 전투력이 아주 높았지만 평지에서는 위나라에게 항상 열세였습니다.

위나라가 촉나라에 집중하는 당시에 틈을 노려서 서주로 여러번 침공합니다.

촉나라가 장안쪽으로 오기 때문에 그곳에서 가장 먼 서주로 침공을 한 오나라입니다.

위나라 입장에서는 원군을 보내려면 아주 오래걸렸기 때문에 사실상 서주 자체 병력으로 오나라를 막아야 했습니다.

손권, 육손, 제갈각 등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었지만 서주를 함락하지 못했습니다.

요약하면 원정과 홈에서 전투력의 차이가 많았습니다.

사마염의 진나라가 촉나라를 정복하고 오나라를 침공할 때 생각보다 고전했습니다. 역시 자국에서는 아주 강했습니다.

기타

위나라가 국력을 바탕으로 50~100만 병력을 왜 육성하지 않았는지 의문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휘체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최대로 통솔할 수 있는 병력이 30만명 수준이였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무전기 형태의 통신이 구축되고 나서야 50만명 이상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삼국시대 같은 옛날에는 육성이나 깃발 등으로 군대를 인솔했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규모는 10~20만명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사실 전투에서 병력보다는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이 맞습니다. 아무리 병력이 많다고 해도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한다면 소규모 병력에게 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동서양 역사에서 자주 연출되었습니다. 아무튼 기술력의 한계로 위나라도 더 큰 규모로 병력을 육성하지 않은 것 입니다.

삼국지시대에 대해서도 흥미롭습니다. 공식적인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 건국으로 하면 50년 정도의 기간입니다.

만약 그 이전의 성장 과정을 포함하면 100~120년까지 됩니다. 인기와 비교하면 생각보다 길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