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가 조선시대보다 나았던 이유

역사상으로 훨씬 이전 시대이지만 기술력, 군사, 문화 등은 고려가 우위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쉽게 말해서 조선은 과거보다 더 퇴보된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있을 수 있었는지 하니씩 파악해 보겠습니다.

권력

일단 가장 큰 이유는 권력 구조에서 있습니다.

고려시대 왕들은 왕권이 강했던 적은 아주 드뭅니다. 1대왕 태조왕건이나 31대왕 공민왕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권력이 약했습니다.

왕이지만 신하들의 눈치를 보며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여기에는 고려의 시작부터 원인이 있습니다. 왕건은 신라 호족 출신으로 궁예의 부하가 됩니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켜서 궁예의 세력을 흡수해서 결국 통일을 하게 됩니다.

즉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아주 큰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냥 다른 세력과 마찬가지로 일개 평범한 호족 출신이였습니다.

따라서 지지기반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려 29명의 부인과 혼인을 합니다. 정략결혼을 통해서 본인의 권력을 강화합니다.

왕건의 생전에는 이것이 효과가 있었지만 사후에는 권력이 분리되는 결과를 만듭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왕보다 신하들의 권력의 센 경우가 자주 나오게 됩니다.

일단 권력이 왕과 신하로 두개로 분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킨 무신정권까지 생기며 권력이 세개로 분리됩니다.

물론 무신정권 초창기에는 무신들이 권력을 독점했지만 문제점을 깨닫습니다. 무신이 권력을 독점할 경우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고 왕을 무시해서 명분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신정권이 시간이 흐를수록 문신들도 우대하고 왕의 체면도 어느정도는 살려줍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의민, 최우가 오랫동안 권력을 잡습니다.

민주주의 삼권분립처럼 권력이 나눠졌기 때문에 나름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됩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권력이 분산되었기 때문에 서로 견제하며 현대와 유사한 행정 체계를 유지합니다.

조선시대는 거의 왕에게 권력에 독점되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같은 성군이면 나라가 잘 돌아갑니다.

하지만 한명에 의해서 나라의 운영이 결정되기 때문에 왕의 능력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다소 위험한 구조였습니다.

전쟁

조선시대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제외하면 아주 큰 전쟁은 많지 않았습니다.

반면 고려는 초기부터 후기까지 전쟁이 없었던 기간을 찾기가 더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민이여도 공을 세우면 평민이 되고 장군까지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본인이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신분을 바뀔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초기 여진족, 중기 거란, 후기 몽골 등 대표적인 상대가 있습니다.

여진족과 거란은 어떻게든 막아냈지만 결국 몽골에게는 집니다. 그래도 무려 9번이나 전쟁을 했습니다.

더 이상 전쟁을 하면 서로에게 이득이 없었기 때문에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이 됩니다.

일종의 속국이 된다는 의미로 왕 이름 앞에 충자가 붙은 왕은 부마국 시절입니다.

해당되는 왕은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으로 모든 기간을 합쳐서 116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왜구, 홍건적 등도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100년 동안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도 있었지만 고려시대는 정반대입니다.

474년 내내 전쟁을 준비하고 적들과 싸웠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무기나 전투능력도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유명한 장군중에서 평민이나 천민출신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조선에서는 태어난 신분을 바뀔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동기부여나 열정이 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려에서는 본인이 열심히만 하면 얼마든지 잘 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목표나 열정도 많았습니다.

권력이 분리된 동시에 신분 상승의 기회가 많아서 모든 분야에서 성장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노비들도 귀족처럼 화려한 옷을 입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계급간의 차별이 아주 심하지 않았다고 추측도 가능합니다.

기타

국가의 시스템과 함께 노력하면 신분이 상승될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발전합니다.

대표적으로 팔만대장경을 만들거나 예술성이 높은 고려청자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무늬가 없는 백자를 만들었는데 이유는 더 복잡한 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독선적이고 꽉 막힌 시스템이 문화를 퇴보시키는데 일조했습니다.

이외에도 고려의 국교 불교가 여러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일단 기도를 하며 백성들을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전쟁시에는 정규군처럼 싸우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승병이 있었지만 고려시대와 비교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절이 있었고 승려의 수도 많았습니다. 고승도 있지만 뭔가 이도저도 아니면 승려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하여 신분 상승을 노리거나 승려가 되는 등 선택의 기회도 많았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을 통해서 고려는 나름 합리적인 국가로 거듭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