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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선수경력 및 재미있는 사항

일명 차미네이터라는 별명으로 선수시절 단단한 피지컬을 자랑했습니다.

현재는 국가대표팀 축구코치로서 클린스만 감독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선수시절 커리어와 다양한 정보들을 소개합니다.

독일

일단 프로 데뷔를 독일에서 합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독일 명문 레버쿠젠에서 차두리를 영입합니다.

참고로 2002년 월드컵에서는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로 아마추어인데 이례적으로 대표팀에 발탁된 것 입니다.

본격적인 프로 커리어는 2002-03시즌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레버쿠젠은 항상 유럽대항전에 도전하는 클럽이였기 때문에 신인 선수 차두리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2년동안 분데스리가 빌레펠트, 프랑크푸르트 임대생활을 합니다.

K리그 경력없이 그냥 고려대에서 뛰던 선수가 빅리그에서 바로 뛰었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후 강등된 프랑크푸르트로 완전 이적하며 2부 분데스리가2에서 많은 기회를 얻게 됩니다.

1부 분데스리가에서는 애매했지만 2부에서는 본인의 주력과 피지컬을 바탕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이후 1부와 2부를 오가며 계속 독일에서 선수생활을 했지만 1부에서는 확실히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거쳤던 클럽은 레버쿠젠, 빌레펠트,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코블렌츠, 프라이부르크가 있습니다.

독일에서 8시즌을 뛰었는데 거쳐간 클럽으로 6개로 저니맨 성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활약했던 클럽은 프랑크푸르트, 프라이부르크 시절이 유일합니다.

FC서울

다소 아쉬웠던 독일 커리어를 뒤로 하고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2시즌을 뜁니다.

이 때 기성용과 2시즌을 모두 함께 합니다. 유럽클럽에서 한국인 선수가 동시에 뛰는 최초였습니다. 아우크스부르크 구자철, 지동원, 홍정호가 나오기까지 기록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셀틱에서 기성용의 적응을 많이 도왔고 이후 K리그 FC서울로 이적합니다.

2013시즌 처음 K리그에서 뛰었지만 곧바로 적응하며 활약합니다. 이적 당시 나이가 30대 초반이였기 때문에 약간 의문부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2014시즌 베스트11에 선정되며 본인의 클래스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세번째 2015시즌에는 현역에서 은퇴를 하게 됩니다. 당시 나이가 만으로 34세라서 조금더 해달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한국나이로 계산해도 30대 중반이기 때문에 충분히 1~2시즌 정도는 뛸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프로 13년, 아마 대학교까지 합치면 17년 축구선수로서 활동하고 은퇴를 합니다.

차두리 코치
출처 : 차두리 인스타그램

은퇴

은퇴 이후에는 빠르게 코치 경력을 시작합니다.

대한축구협회 전력분석관을 시작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정식 코치가 됩니다.

독일 출신의 감독이기 때문에 통역도 하고 전술도 조언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슈틸리케 감독이 빨리 경질이 됐기 때문에 이후 FC서울 유스 오산고 감독을 합니다.

오산고에서 감독으로 여러번 우승을 하며 지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최근 다시 한번 독일 출신 감독이 대표팀으로 선임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다시 대표팀 코치를 임명되었습니다.

확실히 언어적인 장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물론 오산고에서 전술적인 능력을 증명하긴 했지만 독일어라는 특수성도 작용했습니다.

독일 출신의 감독들이 잘했다면 긍정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슈틸리케에 이어서 클린스만도 부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클린스만의 역대 최고의 국가대표 스쿼드에도 부진하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코치 경력에 일종의 오점이 생기며 다소 아쉽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기타

부모님 모두 한국사람이지만 차두리는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나서 10살까지는 계속 독일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독일 교육을 받은 것 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도 독일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꾸준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국적은 엄연한 한국인이지만 사고방식은 독일인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책을 읽을 때 한국어보다 독일어가 더 편하다고 직접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습니다.

혈통은 100% 한국사람이지만 독일에서 태어났고 독일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제결혼이 활발해졌기 때문에 이중 언어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가 한국인, 미국인이면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모국어로 습득하는 것 입니다.

따로 공부하지 않고 부모가 말하는 것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네이티브 언어가 2개가 됩니다.

이것과 비슷하게 차두리도 독일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부모님에게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외에도 역대 국가대표 선수중에서 피지컬이 가장 좋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습니다.

실제로 대표팀 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을 하다가 코치 한명과 살짝 부딪혔는데 해당 코치가 뼈에 금이 갔다고 합니다.

또한 경기에 나서면 상대 국가 선수들이 모두 겁을 먹고 몸싸움을 피했습니다.

본프레레 감독 시절에는 공격수였는데 이동국, 조재진 등과 함께 강력한 피지컬로 공격 라인을 구축했습니다.

오른쪽 풀백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2006년까지는 공격수로 뛰었습니다. 이후 완전히 수비수로 전향하며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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